<책> 포스트 잇 - 김영하 산문집

2010. 8. 3. 21:58




포스트 잇 - 김영하 산문집 (현대문학, 2002)

꽤 오래전에 읽었던 책이었습니다. 최근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근처의 도서관들을 찾아보니 애석하게도 책이 소장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구입을 했고, 지금 읽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찾아서 읽을 것 같습니다. 소설을 쓰시는 것이 주업이신 소설가께는 죄송하지만 전 이 분의 산문집이나 여행 에세이들을 소설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좋아하고 있습니다.
포스트 잇은 작가의 여러가지 생각이나 신변잡기에 관련된 물건들에 관한 여러가지의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한 때 '도널드 덕' 편을 읽고서 저 또한 인형들을 찾아다녔던 기억도 있습니다. 오늘은 책 중에서 '허영' 편의 앞부분을 올릴까 합니다. 혼자하는 여행에 관한 글인데 제 스스로 찔리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p.92 허영

혼자 하는 여행은 대체로 허영의 결과일 때가 많다. 자기애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그 졸렬한 결말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가끔 여행이라는 극적인 방식을 동원하게 된다. 그런 여행자일수록 주변을 시끄럽게 하고 자신의 허무와 고독, 결단력을 강조하고 과장한다. 인도나 유럽 같은 곳에선 이마에 내천 川 자를 새긴 채 여기저기를 떠도는 이런 유형의 여행자를 자주 만나게 된다.

이런 이들이 굳이 여행을 탈출구로 택하는 이유는 그래도 여행이 자살이나 이직, 이민보다 비용이 저렴하다는 점, 그런데도 폼은 나면서 비교적 기간도 짧아 여행 전에 하던 일로 쉽게 복귀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여행자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이들은 연애사와 직업적 경력, 가족 관계 들을 여행용으로, 마치 거위털 침낭ㅊ럼 새로 장만하여 비행기 트랩을 오른다. 유럽의 기차역엔 애인과 결별하고 떠나왔다는 여자, 잘 나가던 직장을 때려쳤다는 남자, 사업도 구상할 겸 머리도 식힐 겸 와 봤다는 사람들이 광장의 비둘기만큼이나 많다.

가면. 이것이야말로 여행자의 필수품이다.

- 포스트 잇 중 '허영' - 김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