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국을 쫓아 가는 길

2010. 6. 10. 23:33발걸음 제주.


제주 여행에 관한 책에서 5월 말쯤이나 6월 초에 종달리 해안도로를 가다보면 길 양옆에 수국이 가득 핀 것을 볼 수 있다는 글을 읽고 흐린 날이었지만, 수국을 보러 갔었습니다. 가다보니 수국은 있었지만, 아직 만개하기에는 이른 때였고, 그저 간만에 해안도로 드라이브를 즐기다 오게 되었습니다.

김녕에서 종달리까지 가는 도중에 월정리라는 곳에 작은 해변이 하나 있습니다. 작년에 친구와 해안도로를 지나가다 발견하고 잠시 놀면서 사진찍던 곳이었습니다. 그 날 제겐 그 장소가 꽤나 마음에 들었었고, 가능하다면 커피 한잔을 하며 머물고 싶었지만, 애석하게 커피를 파는 곳은 꽤나 멀었었습니다. 거의 성산까지 차로 30분 이상을 가야 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가는 길에 보니 새로 커피집이 하나 생겼더군요. 하얀색 건물에 작은 창을 가진, 여자분 세분이서 커피와 쥬스, 홍차등을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새로운 손님 두 분이 오셨었습니다. 지나가다 벙커 처럼 생긴 커피집이라 궁금해서 왔다고 하시면서, 음료를 시키시고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을 듣던 중에 신청곡이라며 '무조건'을 틀어달라고 하셨습니다. 음악이 나오니 갑자기 따라부르시며 춤을 추시더군요. 그 모습을 보면서 카페 주인도 신나게 춤을 추셨고, 주변 사람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내 되시는 분은 부끄럽다며 잠시 멀리 떨어지면서도 계속 웃고 계셨습니다. 흐린 날씨. 사람들의 기분도 가라앉아 있었는데, 덕분에 꽤나 즐거웠었습니다.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고, 웃고, 제주도에서 지내면서 간만에 느끼는 기분이었습니다. 커피를 마시고 떠나는 길에 문득 들었던 생각이 그 까페가 꼭 일본영화 '안경'에서 나온 빙수집과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왠지 아침 나절에 그곳에 가면 바닷가에서 생전 처음보는 체조를 시킬 것 같았고, 어디 가는 길을 물어보면 '앞으로 계속 가다가 마음이 불안해지는 지점에서 100 미터쯤 더 가서 좌회전' 하라고 시킬 것도 같았습니다.

가끔 움직이면서 이런 곳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들이 이 곳에서 지내면서 얻는 즐거움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성산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면 갈 적마다 지나치지 못하고 들리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