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LOVE EAT - 홍수연 지음

2008. 7. 6. 23:48

맛대맛 작가 홍수연 님의 글입니다.

맛대맛 작가의 잘 먹고 잘 사랑하는 법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네요.

가끔씩 들리던 교보문고에서 책을 잠깐 살펴보고 읽어보고 싶었는데,

수원에 있는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빌려왔습니다.

실은 맛대맛 작가가 쓴 책이라 괜찮은 음식점들이 좀 나열되어 있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제가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른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반갑네요.

그냥 음식과 관련된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에세이 였습니다.

그 중에서 브라보 마이 라이프 중에서 대박식당의 비결을 적어둔 것이 있어 좀 옮겨보려고 합니다.

예전에 잠시 창업을 꿈꾸었던 적이 있었고, 또 언젠가 나이가 들어 음식점은 아니지만

창업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p.157~

첫째, 주인이 다 해먹는다.

우르르 떴다 폭삭 가라앉는 식당이 아닌, 꾸준히 대박을 이어가는 식당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아무리 직원이 많고 업무가 세분화되었어도 주인이 모든 걸 다 꿰뚫고 있다는 것이다.
주방장이 따로 있더라도 결정적인 맛의 비결은 주인이 쥐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오늘 당장 주방장이 바뀌어도 똑같은 맛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주인. 그게 기본이다. 카운터에 앉아 카드나 긁어대는게 아니라 급하면 불판 위의 고기도 척척 잘라낼 수 있는 사람. 하다못해 냅킨 주문이나 냉장고 속 유통기한이 지난 양념하나까지 놓치지 않아야 한다.
식당에 10명의 직원이 있는데, 그 중에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하나 생기면 그 식당이 망할 확률도 1/10 만큼 늘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생은 어떠한가? 분명히 삶을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사람은 너무나 많다. 하지만 '소중하다' 는 의미와 '의존한다'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 내 삶을 절대적으로 기대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가 나를 배신하는 순간 내 인생은 뒤죽박죽 엉망이 되어 버린다.(이건 경험에 의한 학습으로 너무나 확실히 알게 된 진리이다.)
부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는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부모님께 용돈을 거의 받지 않았다. 워낙 보수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터라 경제적인 자립을 하지 않고서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덕분에(?) 몇 년 뒤 집안이 쫄딱 무너졌을 때도 내 삶은 별로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내 삶은 분명히 내 것이니까. 내가 주인이니까. 내가 다 해먹고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둘째, 사소한 것들에도 설명이 가능하다.

그럴싸하게 치장해놓은 식당들에 답사를 가면 일단 과장된 감탄사로 사장들에게 예를 갖춘 뒤, 아주 사소한 질문을 먼저 한다. "이 젓가락은 어디서 사셨어됴?" "벽지는 왜 이 색으로 고르셨어요?" "이 화초 좋아하세요?" 그러면 대부분 대답은 두 가지 방향으로 갈린다. 전문가의 의견에 따랐다거나 그냥 어디서 생겼다거나 하는 수동형의 답변과 아주 구체적인 능동형의 답변.
면발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흠이 패인 걸 찾았다든가, 고기의 김이 잘 살아 먹음직스러워 보이고 연기 때문에 변색이 안 되도록 검은 벽지를 발랐다든지, 사실 그렇게 자세한 대답을 하는 분들이 처음부터 그런 생각과 의도를 가지고 추진한 경우는 많지 않다.
다만, 느닷없이 그런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다는 건 본인도 누군가에게 질문을 했다는 얘기이고 그 과정에서 충분한 의견교류가 있었다는 얘기다. 즉, 벽지를 왜 그런 색으로 발랐는지 대답할 수 있는 식당 사장은 그 만큼의 열정과 관심과 집중려글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성공확률이 높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나는 꿈속에서도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질문하고 대답한다. 물론, A형의 물병자리 여자가 가진 소심함과 피해의식이 그 원인이기도 하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차곡차곡 정리가 되어가는 걸 느낀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 정리가 조밀해지기 때문에 스무살의 나보다는 서른 살의 내가 훨씬 분명해졌다. 스무 살 때는 장래 희망의 뭐냐는 질문에 살짝 갈팡질팡했지만 지금은 더욱 구체적이 되었으니 말이다.
사랑은 빼고, 그건 여전히 헛갈린다.

셋째, 주방이 넓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정말 대박 난 식당들은 아예 처음부터 넓은 주방을 배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파리의 한 레스토랑은 테이블이 열개밖에 안 되는데 주방은 100평 가까이 되는 곳도 보았다.
암사동의 한 장어구이집은 테이블이 모자라 손님은 줄을 섰는데도 주방은 널널했다. 아무리 주문이 밀려들어도 동선이 꼬이는 경우가 없다. 착착착 안정감 있게 돌아간다. 먹는 사람들은 급한데 만드는 사람들은 느긋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넓은 주방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개업 초기 파리 날리던 시절, 필요 이상으로 넓은 주방을 보고 한소리 했던 사람들은 이제야 무릎을 친다. 분명 그 사장님은 대박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그 시스템을 미리 준비해 놓은 것이다.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