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자거라, 네 슬픔아 <신경숙 글/구본창 사진/현대문학/2003>

2004. 4. 17. 00:00

이 책은 구본창님의 사진에 신경숙님이 지나간 추억을 되살리며 글을 붙인 에세이집입니다.

워낙 소설가들이 쓰는 에세이들을 좋아하고, 거기에 사진들까지 있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읽고 나서 짧은 소감 한마디를 적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저에게는 글잘쓰는 사람들을 항상 질투하게 만들곤 합니다.

연꽃과 어머니의 수의 이야기, 김포공항의 이륙하는 비행기 이야기, 제주도에서 만난 처녀이야기, 보리밭, 책상, 비, 노을,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 등등 저자의 지나간 추억들이 많이 담겨있습니다.

그 중에서 루미라는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를 읽던 중 며칠 전 사람들과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것이 떠올라 전문을 옮겨볼까 합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에 아들과 함께 사는 후배네 집을 방문했다가 페르시안 흰 고양이를 보았다. 하얀 털실을 뭉쳐놓은 것 같은 조그만 새끼 고양이가 데구루루 굴러다녔다. 사랑스럽기보다 어찌 저렇게 작을까 싶었다. 태어난 지 한 달인가 되었다는 새끼 고양이는 애잔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손에 닿는 흰 털은 또 왜 그리 보드라운지 그만 뭔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고 싶을 지경이었다. 후배를 보러가서 실뭉치 같은 고양이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다 왔던 그런 날이 있었다. 그로부터 삼주일쯤 후에 여행에서 돌아온 후배가 내게 고양이를 데려가겠느냐 물었다. 후배는 고양이와 더는 함께 살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분양 받은 집에 돌려주려다가 지난번에 내가 고양이를 따라다니던 꼴이 떠올라 돌려 보내기 전에 내게 먼저 전화를 해본 모양이었다. 세 시간쯤 생각하다가 날이 어두워지자 자동차를 몰고 후배네로 가서 고양이를 데려오자, 나랑 함께 사는 이는,

소금이 바다 속에 녹듯이
나는 신의 바다 속에 휘말려버렸다.
신안도 가버리고, 불신도 가버리고
회의도 가버리고, 확신도 가버렸다.
갑자기 내 가슴 안에
별 하나 맑고 밝게 비친다.
그 모든 태양의 빛조차
그 별의 빛 속에 사라져버렸도다.

라는 시를 남긴 페르시안 시인 '잘랄 앗 딘 루미'를 따서 고양이에게 '루미'라 이름 붙여주었다. 루미가 내 옆으로 온 지난 구월 시월 그리고 지금 십일월 나는 때때로 간절해지는 어떤 욕망을 루미를 바라보는 일로 메웠다. 고양이라는 족속들은 개와는 완전 다르다. 그 첫째가 인간을 따르지 않는다. 개가 사람을 의지한다면 고양이는 공간을 의지한다. 개가 사람의 사랑을 원한다면 고양이는 공간의 아늑함을 원한다. 루미가 우리 집에 와 맨 먼저 한 일은 자기가 잠들 곳을 찾는 것이었다. 여기저기 왔다갔다하던 루미는 자기가 잠들 곳을 몇 곳 정했다. 첫날 밤은 텔레비전 뒤의 엉킨 전선줄 위에서 참 불편하게 구부리고 자기에 내가 텔레비젼을 벽과 바싹 붙여 틈이 없게 해버렸더니 다음에는 식탁의자 위와 내 서재 우편물을 담아놓은 박스 속에서 잤다. 무지하게 잠을 잤다. 오전에 식탁의자 위에서 잠들어 있는 것을 보며 외출했다가 저녁 참에 돌아와도 그때까지 자고 있을 때도 있었다. 야옹거려서 안아줄라치면 저만치 몸을 뺐다. 겨우 한번 안기면 체념한 듯이 잠깐 품에 있다가 또 몸을 뺐다. 너무 안고 싶어서 루미가 싫어하는데도 놓아주지 않은 적이 많았다. 바둥거리는 어린 것을 숨막히도록 안고 있었다. 발을 씻겨주면 저를 죽이는 줄 알고 질겁하며 내 팔과 어깨를 할키었다. 목욕이라도 한번 시키려면 내 얼굴까지 상처가 났다. 발톱을 깎아주면서 매번 루미야, 나를 그렇게 못 믿겠냐, 중얼거리며 쳐다보면 루미는 내가 당신을 어떻게 믿죠? 하는 듯 나를 외면하곤 했다. 누군가 고양이는 자기 주인이라고 생각되는 인간의 무릎에만 올라앉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어찌나 서운하던지. 그래도 시간은 흘러 같이 살기 시작한 지 두달 가까이 되자 내게도 조금 친밀감을 느끼는지 목욕을 시키고 수건으로 닦아준 뒤 드라이기로 털을 말릴 때면 예전과 달리 얌전해져 등을 구부리곤 했다. 발톱을 깎아줘도 가만히 있었다. 내가 자고 나오면 내 서재 박스 속이나 식탁의자 밑에서 저도 나와 내 발에 몸을 비비며 야옹거리며 스트레칭을 했다. 그러나 안으려고 하면 저만치 가버렸다. 여전히 잠은 무지하게 잤다. 루미는 새벽에 깨어나 집 안의 화분을 깨고 흙과 놀았다. 개미 같은 게 지나가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루미가 차츰 내 옆에 있기 시작했다. 내가 책상의자에 앉아 책을 보면 루미는 책상에 올라가 웅크리고 앉아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텔레비전을 보면 루미는 텔레비전 위로 올라가 화면을 내려다보며 움직이는 화면을 잡아채려고 발을 움직거렸다. 내가 소파에서 낮잠이라도 자면 루미는 내 발 끝에 엎드려 잤다. 나와 가까이 있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그러나 여전히 너무 가까운 것은 싫은지 늘 저만치 그러나 내 눈에 들어오는 곳쯤에 앉아 있거나 엎드려 있었다. 사랑하면 몸은 매이고 마음이 아프다. 자동차 뒤에 태우고 다니는 것도 모자라 루미의 모래화장실을 트렁크에 싣고 여행을 갔다.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의 계단을 오르는 내 발자국 소리가 매우 성급해졌다. 책을 읽다가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루미를 찾아다니곤 했다. 루미는 소리없이 내리는 눈처럼 저만치 앉아 있는데 나는 못 보고 이문 저문을 여닫다가 뒤늦게 처음 내가 있던 그 장소에 가만히 앉아 있는 걸 발견하고는 루미야! 왜 대답을 안 해! 소리를 치기도 했다. 비가 내리는 날의 루미는 너무나 아름답다. 베란다 창가에 붙어 앉아 빗방울이 묻는 창을 몇 시간이고 바라본다. 무슨 생각을 저리 하는 걸까, 하고 여기는 건 인간인 나의 생각일 뿐인지도 모른다. 루미는 그저 자꾸만 창에 부딪혀오는 움직이는 빗방울이 신기해서 그러고 있을 뿐인지도. 그러나 지치지도 않고 빗방울을 바라보고 있는 그 뒷모습이 안겨주는 애잔함은 마음을 흔들곤 했다. 나는 루미가 그러고 있을 때면 방해하고 싶지 않아 문도 가만히 닫고 발걸음도 가만가만 떼었다. 그러다가 그만 담싹 안아버리곤 했다. 그러고 있지 마라, 하면서.
어느 날은 보들레르의 고양이라는 시를 루미에게 읊어주기도 했다.

오너라, 내 예쁜 나비야, 사랑에 빠진 내 가슴 위로
발톱일랑 감추고
금속과 마노 섞인 아름다운 네 눈 속에
나를 푹 잠기게 하렴.

내 손가락이 네 머리와 유연한 등을
한가로이 어루만지며
내 손이 전기 일으키는 네 몸을
만져보며 즐거움에 취해들 때,

나는 마음속에서 내 아내를 본다. 그녀 눈매는
사랑스런 짐승, 네 눈처럼
그윽하고 차가와 투창처럼 꿰뚫고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미묘한 기운, 위험한 향기
그녀 갈색 몸 주위에 감돈다.

내 마음이 가라앉아 있는 것은 루미 때문이 아니다. 내가 루미에게서 받은 그 많은 위로가 차라리 버거웠을 것이다. 아니다. 어느새 십일월이라는 사실이 나를 놀래켰는지도 모른다. 이루어지지 않을 나의 욕망들을 이제는 루미의 도움 없이 정면으로 보자는 마음인지도. 루미와 함께 있으면 12월도 13월도 14우러도 덧없이 가버리고 말 것이라는 허무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너무 사랑해서 만져서 죽일 것만 같은 두려움도 있었다. 십일월은 고양이같이 차갑고 부드러운 달이다. 연유도 없이 온종일 짜증을 낸 어느 날 먼 곳으로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라는 메일을 한 통 보내고 해 저물녘에 따뜻한 물을 받아 루미를 목욕시켰다. 발톱을 깎아주고 목덜미를 쓸어주었다. 야릇한 슬픔에 내가 거실 바닥에 팔을 괴고 엎드리자 루미는 오디오 위에 올라가 나를 응시하였다. 자정 무렵에 저 아래에 사는 이에게 루미를 안겨주었다. 헤어지는 줄도 모르고 루미는 그이의 품속에서 하얗게 안겨 있었다. 루미는 소리없이, 저만치 존재함으로써 나에게 관계 맺기에 적아히 필요한 거리감을 일깨워준 짐승이다.

그랬으나 나는 돌아오는 밤길에 조금 울었다.

신경숙님의 "자거라, 네 슬픔아" 中 발톱일랑 숨기고 의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