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의 어느 날

2008. 1. 10. 00:00Ordinary Day

주말이 어느덧 오후만 남았네.

밥먹고 집에서만 있었더니 영 소화가 되지 않아서 카메라 한 대, 메모장 하나만을 들고 집을 나섰어.

약속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고, 갈 곳 역시 없는 생활...이제는 정말 지겨워.

가끔씩은 메신저나 채팅창을 통해서라도 이야기를 나눌 사람을 찾고 있지만,

그 역시 아무것도 아닌 허상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어.

하늘이 참 맑다. 날씨가 약간 더 차가와진것이 차갑고 깨끗한 맑은 물을 보는 것 같아 느낌이 좋아.

만석공원을 한바퀴 걸었어.

오후부터는 따뜻해질거라는 일기예보가 잘 맞아가는 것 같아.

파란 하늘아래 아직은 차가운 느낌이 나는 공기속을 헤쳐나가며 걷는 것은 마음이 상쾌해져.

공원길 한쪽끝에 이어진 미술 전시관에 갔었어.

항상 그랬듯이 우선 나를 반겨주는 것은 솟대위에 고정되어 버린 새 한마리였어.

왠지 푸른 하늘을 날아보고 싶어하는 데 솟대위에 걸려서 바라보며 그리워만 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마음에 걸렸었어.

주위에 다른 솟대들도 있고, 그 위에 다른 모양의 새들도 앉아 있지만,

혼자 더 높은 곳으로 따로 떨어져있는 모습이 더 외롭고 쓸쓸해 보였어.

미술관 안을 둘러보고 다시 밖으로 나왔어.

아직은 해가 지지 않았고, 적당한 바람속에서 연을 날리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어.

휴일에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으로 나들이 나온 지극히 평범한 모습의 가족들...

그런 평범한 모습이 때로 내게 부러운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하거든.

우리 사람은 되지 못해도 괴물을 되지 말자 던 영화 '생활의 발견'의 대사 한마디가 떠오르네.

이미 괴물화되어 버리고 있는 내 모습에 씁쓸하기만 해.

공원을 지나 근처 할인마트안에 있는 커피숍으로 들어갔어.

좋아하는 라떼 한잔과 울지않는 전화기를 테이블위에 올려놓고서, 이렇게 몇 글자 끄적이고 있어.

간혹 돈 들이지 않고 집에서 하면 안될까 하는 질문을 내게 던져본 적이 있어.

해본적은 있지만, 잘 안되더라고...

집에서는 등에는 무거운 짐을 올려놓고, 한쪽 발엔 멀리가지 못하도록 사슬을 묶어놓은 느낌이거든.

때로는 등의 무게가 가슴으로까지 내려와 숨이 막힐 것 같아 잠도 들지 못할 때가 있거든.

모든 부담들을 버리고 탈출해버리고 싶었지만...그건 항상 마음뿐이었어.

거의 모든 아침마다 어딘가 목적지를 찾아서 출발하곤 하지만 세상이 모두 어두워지고 나면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한 채 제자리로 돌아오곤 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든 것이 안개속에만 있는 것 같아.

언젠가는 이 안개가 걷힐날이 있겠지?

아니면 안개속에서 나를 이끌어 같이 걷자고 할 사람을 만날 수 있겠지?

이제 그런 것이 내게 남은 거의 유일한 희망일지도 모르거든.

그것 말고도 여러가지 작은 바램들이 있기는 하지만, 글쎄 과연 바램이고 희망이었을까?

이제 천천히 정리하고 돌아갈 준비를 해야겠다.

조금씩 깔려가는 어둠이 내게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아.

'혹시나?' 했던 생각들은 언제나 내게 '역시나..'로 대답을 해주고,

내가 기다리던 우연은 결코 인연이 되어주지 않더라고.

뭐 하루이틀 일도 아닌데 크게 실망할 생각도 없어. 그렇다고 유쾌하지도 않고 말이지.

오늘도 또 이렇게 하루가 사라진다.

오늘밤도 어제처럼 별이 빛나는 밤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바라봄으로 나에게 빛을 전해주는 별들을 바라보는 것은 즐거워지거든.

내가 보내는 신호에 바로 응답을 해주는 것 같아서 말이지.

이제 정말 일어나야 겠다.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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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에 써 놓았던 일기의 한 부분 입니다.

대화할 사람이 없어, 나에게 혹은 누군지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쓰던 편지 중 한 장이었습니다.

지금은 이 글을 읽어도 기억나지는 않지만, 무언가 기다리던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때도 이미 나이가 적지 않게 들어있었지만,

여전히 지금도 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외로움...쓸쓸함...허전함...제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