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2010. 6. 5. 18:06ㆍ발걸음
"여행은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일이고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나와 다른 존재들이기에 떠나서 만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또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크고 넓고 아름다운 풍경 속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행은 그런 것들을 가져다줍니다. 떠나면 필연코 누군가를 만나게 마련입니다. 어두운 지하 카페에서 사람을 만나면 늘 그런 곳만 전전하다 헤어지게 됩니다. 이별을 하는 경우에도 하늘이나 바다에서 헤어지는 게 늙어서 안락의자에 앉아 반추하기에도 아름답지 않습니까. 낯섦. 미지에의 두려움. 설렘. 슬픔. 황홀. 어린아이가 바다와 처음 직면했을 때 내지르는 외침 같은 바로 그 환희! 이 모든 것이 여행속에 감춰져 있습니다. 여행은 보물찾기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30번 도로는 이렇듯 비가 내리는 날엔 그만입니다. 흐린 날 어딘가로 숨고 싶으면 30번 도로를 따라가보면 됩니다. 어느덧 내 모습이 슬그머니 감춰집니다. 내가 사라진 곳은 은은히 색동으로 장식된 낯선 길 끝의 어느 방입니다. 비에 젖는 바다와 뒤섞여 밤새 조용하고 화사한 꿈을 저작할 수 있습니다. 혼자이면 어떠랴.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엔 30번 도로 위에 있고 싶습니다. 그 길은 화엄의 길은 아니라도 분명 달콤한 여수의 길인 것입니다.
언젠가 당신과 함께 이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윤대녕 여행 산문 '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 중에서
몇 일전 발을 삐끗했는지 한동안 걷기 힘들어 방에만 있었습니다. 한동안 많이 돌아다녀서 그랬는지 움직이는 것도 귀찮고해서 근처의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거의 집안에만 있었는데, 막상 움직일 수 없게 되어버리니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몇일동안 파스를 붙이고 움직이지 않았던 덕분인지 많이 걸을 수는 없었지만 집밖으로 나서서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고, 걷는 거리가 제일 적은 바닷가를 찾았습니다.
꽤 오래전부터 여행에 대한 생각이 나거나, 아직은 없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지면 읽던 책이 윤대녕님의 '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과 곽재구 님의 '삶을 흔들리게 하는 것들'중의 한 편인 '길위의 꿈' 이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 윤대녕님의 책을 들고 파란 하늘과 옥빛 바다 사이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다 돌아왔습니다. 맛있는 아이스 커피 한 잔만 있었더라면 정말 금상첨화였을 것 같았는데, 주변에 맛있는 커피를 구할 곳이 없어서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다음에 또 이렇게 움직이게 되면 미리 준비를 해놔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