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씨의 여행자 시리즈 2번째 책입니다.
전작 '여행자 : 하이델베르크' 편 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습니다.
하이델베르크 편은 콘탁스 G1 으로 직접 촬영한 사진과 쓴 글이 있었고, 이번편은 두대의 Rollei 35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마도 하이델베르크 곳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어서 그렇게 와 닿거나 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의 도쿄 편은 제가 예전에 여행을 한번 다녀온 적이 있어 사진속의 지명들이 낯익은 것들이 많이 있어서,
예전의 제 여행기억을 떠올리며 더 즐겁게 읽었던 듯 합니다.
책 앞부분에는 짧은 소설이 하나 있구요, 중간에는 사진들과 짤막한 이야기들. 그리고 뒷부분에는 에세이가 있었습니다.
앞부분의 소설도 재미가 있었고, 뒷부분의 에세이들도 공감이 가는 것들이 꽤 있었습니다.
p.215
물론 롤라이 35로 찍지 못하는 것도 많고(이를 테면 도쿄국제포럼 같은 장대한 건축물의 외관은 아무리 해도 40밀리미터 프레임 안에 들어오질 않는다. 하늘로 솟구친다면 혹 모를까) 놓친 것도 많다. 광각이나 망원 렌즈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워한 적도 많았다. 그렇지만 내게 여행은 어떤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포기하면서 만족하는 것을 배워가는 과정이다. 호텔은 집이 아니고 여행 가방에는 모든 것을 담을 수 없으며 먹고 싶은 것을 다 찾아 먹을 수도 없다. 카메라도 마찬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거기 익숙해지는 수밖엔 없다. 그리고 그 안에서 최상의 결과를 뽑아내면 되는 것이다.
책상위의 롤라이 35를 보며 떠나온 도쿄를 다시 생각한다.
p.236
도시에 대한 무지, 그것이야말로 여행자가 가진 특권이다. 그것을 깨달은 후로는 나는 어느 도시에 가든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말을 다 신뢰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들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앎에 '갇혀'있다. 이런 깨달음을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도 적용해보면 어떨까? 갇힌 앎을 버리고 자기가 살고 있는 도시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한 번도 가지 않은 곳, 이를테면 돈암동의 골목길이나 노량진의 수산시장을 헤매며 그곳에서 여행자처럼 사진을 찍고 음식을 사먹고 그때까지 그 동네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을 하나씩 교정해가는 것이다.
p.113
처음에는 여행자가 여행안내서를 선택한다. 그러나 한 번 선택하면, 그 한 권의 여행안내서가 여행자의 운명을 결정한다. 짧은 여행 기간 동안 여행자는 여행안내서 한 권의 체제에 익숙해지기에도 힘이 든다. 어떤 여행안내서는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비로소 그 체제를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여행안내서들은 방대한 정보를 담고 있어 여행자들은 그 안의 일부만을 몸소 경험할 수 있을 뿐이다. 즉, 여행자는 여간해서는 자신이 선택한 책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텍스트의 바깥은 없다'는 롤랑 바르트의 말을 다시 한번, 이상한 방식으로 떠올리게 된다. 여행안내서는 분명 책이다. 그리고 책의 어떤 속성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여행안내서는 마치 책에 관한 모든 금언을 희화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부분적으로 조금씩 발췌를 해보지만 이것들 말고도 재미가 있고, 공감가는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롤라이 35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들도 좋았고, 맥주에 관한 이야기들도 좋았습니다.
물론 이 책 전반에 있는 사진들도 그렇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