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행의 기록들 05

2009. 10. 18. 11:51발걸음 제주.


여행 6일째. 이제 나름 길어 보였던 여행의 끝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저께 제주로 내려왔던 친구가 출근을 하기 위해 아침 비행기로 출발해야 했었습니다. 김포공항에 안개가 심하단 이유로 제시간에 비행기가 뜨지는 못했지만 아슬아슬 출근에는 늦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친구를 보내고 나니 날씨가 다시 흐려지더니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졌다 그쳤다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어제 하루 동안 바쁘게(?) 돌아다녔던 것도 있었고, 오늘 하루는 제주 시내에서 몇가지 볼 일을 보며 쉬엄쉬엄 여행의 마무리를 하려고 했습니다.


시내에 있는 커피집에 앉아서, 노트북으로 달력 사진을 만들고 몇가지를 검색했습니다. 배터리가 간당간당해지고, 커피속의 얼음이 다 녹을 무렵 사진 편집을 끝내고 근처에 있는 대형마트로 향했습니다. 당연히 마트라면 인화할 사진관도 있으리라는 근거없는 믿음이 있었는데, 그 믿음에 배신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곳은 제주였고, 전 다만 여행자였던 것 뿐이었습니다. 갑자기 사진관을 찾기 위해 분주해 졌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다 사진관이 보이면 내려서 물어보고, 가까스로 즉시 인화해주는 곳을 찾았을 땐 난데없이 USB 메모리에 바이러스가 있다는 이유때문에 인화를 거절 당했습니다. 결국 제주에서 마지막으로 하려던 일을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또다시 비를 만났습니다. 이번 여행은 참 비와 인연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잠시 비내리는 바닷가를 보다가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비는 점점 많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다음날 김포로 출발하기 직전까지 내렸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날 아침을 먹고나서 성산을 거쳐 섭지코지로 갔었습니다. 나름 추억이 하나쯤은 있었던 지명입니다. 몇 번 갔던 곳이어서 갈까 말까 망설였었지만 비행기 탈 때까지의 남는 시간동안 따로 가보고 싶은 곳도 없고 해서 비와 바람을 맞으며 다녀왔습니다. 유명한 건축가들이 지었다는 못 보던 건물들도 있었지만, 비바람 속에서 혼자 머물 곳이 없어서 바로 내려와서 성산으로 돌아왔습니다. 책에서 보았던 경미 휴게소에서 문어와 소주로 점심식사를 대신하고 알딸딸한 취기속에서 제주 공항으로 갔습니다. 이렇게 일주일간의 제주 여행은 끝이 났습니다.


아마도 얼마되지 않아 다시 제주도로 갈 것 같습니다. 이번엔 여행이 아니라 생활이 되고, 일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여행을 일상처럼..." 제가 즐겨하던 이 말이 곧 현실이 될 것 같습니다. 전경린씨의 책 '그리고 삶은 나의 것이 되었다' 중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 내가 아는 비밀 한 가지......, 신은 미리 귀띔한 소원을 잘 들어 준다는 것이다. 해묵은 기도, 해묵은 소망, 해묵은 숙원...... 심지어 전생의 비원 같은 것을 신은 사랑하셔서 꼭 챙겨 준다. 때로는 자기조차 잊은 뒤에,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까지......---  어쩐지 해묵은 소망 하나가 이제서야 성취되는 느낌입니다. 제가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