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행의 기록들 03

2009. 10. 14. 13:12발걸음 제주.


제주 여행 3일째. 제주 올레길 14코스 개장일 이라고 해서 가볼까 싶어서 아침 일찍 일어났더니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14코스는 포기하고 비 그치길 기다렸다가 숙소를 미리 옮겨두었습니다. 전날 잠들었던 숙소도 깨끗하고 나쁘진 않았지만, 주변이 온통 유흥가라서 좀 그렇더군요. 그래서 올레 사이트에서 추천해 주셨던 곳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방을 잡기엔 이른 시간이었지만 사장님께 짐을 맡기고 오늘은 조금 가벼운 몸으로 올레길을 걸어볼 생각이었습니다.


숙소에서 천지연 폭포 가는 길을 따라 걷다보니 바닥에 올레길 표시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6코스의 어디쯤 되었을 것입니다. 어제 걸었던 10코스 길과 달리 서귀포에서 중간부터 갔었던 6코스 길은 한동안 제주 칠십리 공원길로 해서 예쁜 길로만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중간에 오분작 뚝배기로 점심식사를 하고, 아이스 커피 한잔을 들고서 동네길 걷듯이 천천히 걸었습니다. 길을 걷는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이 생각해보니, 걷다가 사진을 찍고, 마음에 드는 풍경이 있으면 잠시 멈추어 서고, 공원에 시들이 적힌 시비를 꼼꼼하게 읽으며 다니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속도와는 조금 맞지 않았습니다.


오전에 비가 그친 이후의 날씨는 상당히 좋았습니다.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었구요. 6코스 길을 따라 끝까지 가보니 7코스와 만나는 곳이 있었습니다. 잠시 쉬어 가려 했던 것이 자그마한 공원 길 같은 곳이 좋아보여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휴게소와는 꽤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또 걷다보면 쉬어갈만한 곳들이 나오겠지 싶어서 계속 걷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에 걷는 사람들도 많고, 관광버스를 타고 내린 사람들과도 섞여서 걸었습니다. 해변 산책로도 있었고, 작은 오솔길도 있었고, 야자나무 길도 있었고, 작은 개울을 건너가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걷다 걷다 보니 몇개의 작은 어촌 마을들도 지나기도 했었습니다. 가끔은 동행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좋은 풍경 같이 걷는 것들도 좋을테고, 어촌의 작은 횟집에 들어가 가볍게 회에다 소주 한 잔 하고 나서 다시 걸어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혼자 하는 여행, 자유로운 여행의 대가 라 생각하고 바닷가를 따라 어두워질때까지 걸었습니다. 아예 깜깜한 밤이 되면 길 모르는 곳을 계속 걷는 것이 무리다 싶어 가까운 시외버스 정류장을 찾아 숙소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갈치구이로 저녁을 먹고, 오전에 걷기 시작했던 천지연 폭포쪽으로 산책을 다녀오고 나니 하루가 다 지나가 버립니다.


여행 4일째는 별로 한 일이 없었습니다. 전날의 피곤함으로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근처의 밥집에서 식사를 하고 숙소에서 짐을 챙겨 나와서 이중섭 미술관에 갔었습니다. 여러가지 그림들, 편지들을 보고 나와서 미리 예약했던 함덕해수욕장 근처의 콘도로 향했습니다. 두 시간쯤 버스를 타고 가다보니 비가 또 내리기 시작합니다. 어제 하루 맑았던 것이 고마워지기 시작했었습니다. 콘도에 가서 그동안 입었던 옷들을 코인 세탁기에 돌리고 우산을 쓰고 바닷가에 잠시 나갔다 왔습니다. 다시 건조기에 넣고 말리고 나니 저녁때 입니다. 제 여행에 짧게 동참해주었던 친구녀석이 서울에서 내려왔습니다. 같이 나가서 제주에 와서 처음으로 회에다 소주 한잔 하고 잠들어 버렸습니다.